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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세상속으로]농부의 아들 성공신화 쓰다 성기태 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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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ivitan 작성일14-09-11 16:39 조회7,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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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농부의 아들 성공신화 쓰다 성기태 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
2014년 04월 03일 (목) 21:37:32 지면보기 10면 정구철 기자  rncjf61@jbnews.com
   

사람은 흔히 '든사람'과 '난사람', '된사람'으로 구분된다. '든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을 일컫고 '난사람'은 재주가 있어 출세한 사람을 말한다. '된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됨됨이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시골마을에서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홀로서기로 국립대 총장과 국제단체 한국본부의 총재까지 된 성기태(62) 씨는 오로지 성실함과 겸손함을 무기로 세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 인생 1막 - 농사꾼 집안 6남매 맏아들

성기태 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에 놀란다. 그는 누구를 보더라도 먼저 달려와 인사를 나눈다. 비록 그가 만난 사람이 후배일지라도 그렇다. 국립대 총장을 역임하고 국제단체 총재를 맡고 있지만 권위의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그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의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6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다. 집에서 20리나 떨어진 수산중학교에 입학해 새벽달과 저녁달을 보면서 학교를 오갔지만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 고등학교 대신 5년제인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 토목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와 초급대학 과정을 거치는 5년제 전문학교가 있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나 "초급대학이라도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열 때문에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도 성 총재의 2년 후배로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잠재돼 있던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 인생 2막 - 학생단체 회장·교수·대학 총장

4학년 때 처음 학도호국단이 생기면서 4, 5학년 2년 연속으로 연대장을 맡았다. 전공과 성격이 잘 맞으면서 좀 더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1972년에 졸업과 동시에 동국대 토목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동국대에 편입하자 마자 이듬해에 전국 150여 개의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학생이지만 회장으로서 단체의 모든 조직관리를 책임지게 되면서 행정경험과 사회경험을 동시에 쌓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1978년 모교인 충주공전에서 조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아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2년만인 1980년에 전임강사가 됐고 3년 뒤에는 조교수가 됐다. 

현재 한국교통대학교의 전신인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는 1989년에 충주공업전문대학으로 승격되고 1993년에 4년제 충주산업대학교로 승격됐다.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이 대학 4년제 승격운동이 벌어질 당시 그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당시 4년제 승격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40대 초반으로 이 학교 기획관리실장을 맡고 있던 그는 범시민추진위의 간사까지 맡아 4년제 승격운동을 주도했다. 직접 4년제 승격을 위한 정당성과 논리를 개발한 뒤 충주시민 1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청와대와 국회, 교육부 등을 찾아가 건의문과 함께 이를 전달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결국 1993년에 4년제 충주산업대학으로 인가돼 개교하게 됐다.

2001년에는 직선 총장선거에 출마해 7명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로 총장에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가 48세로 국립대학 총장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였다. 또 지금까지 유일한 모교 출신 총장이 됐다. 

총장으로 취임한 뒤 무엇보다 교육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168명에 불과했던 교수를 213명으로 늘렸다. 학교 환경개선을 위해 취임 당시 13개 동이던 학교 건물을 20개까지 늘렸다. 또 학생복지를 위해 동문회와 외부인사 성금으로 7억 원의 성금을 마련, 야외공연장을 마련했다.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현대식 아파트형기숙사를 최초로 건립해 타 대학으로부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국제화에 대비해 일본 구주공업대학교, 오이타대학, 중국 상해대학, 연길대학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호주, 인도, 카자흐스탄에 있는 여러 대학들과 국제 교류를 맺고 장단기 학생교류에 나섰다.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을 개설하고 최고경영자과정을 신설해 지역민들에게 평생교육 기반을 마련해 줬다. 당시 청소년들에게 만연해 있던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차량을 특수개조해 '이동과학교실'을 마련, 각종 축제 등 행사장에서 초·중학생들에게 과학체험교육을 실시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이와 함께 2005년에는 갖은 노력 끝에 청주과학대와 통합을 위한 MOU를 체결해 통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생 3막 - 국제봉사단체 총재 그리고 … 

'성실과 봉사'가 좌우명인 그는 교내에서의 생활 외에는 거의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1998년에 친구들과 함께 30여 명의 회원을 구성해 장애아동을 지원하는 국제키비탄 충주클럽을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장애아동들의 복지와 재활증진을 위해 지역의 장애복지시설을 후원하고 외부 출입이 어려운 지역의 재가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바깥세상 보여주기'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또 매년 장애아동들의 체육대회인 '어울마당'을 개최해 오고 있으며 연말에는 '사랑이 있는 곳에'라는 프로그램으로 수익금으로 봉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클럽 확장을 위해 스폰서 클럽으로서 여성클럽인 '미을클럽'과 인근에 있는 '음성클럽'을 설립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월 22일에는 충북 출신 인물 중 두 번째로 제 38대 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를 맡았다.

국제키비탄 한국본부는 성인과 캠퍼스 60여 개 클럽에 2천여 명의 회원들이 가입돼 있다.

성 총재는 국제키비탄 한국본부가 매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최하는 '특수어린이 대잔치' 내년 행사를 충주로 유치할 계획이다.

그는 홀로서기를 통해 이룬 자신의 성공신화에 대해 "가장 끈끈한 줄은 윗사람에게 사랑받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실함을 최고의 무기로 살아온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그동안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과 시장, 교육감 출마예상자로 물망에 올랐지만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을 가지려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한다. 영원한 총장과 총재로 남고 싶다는 뜻이다. 정구철 / 충주



■ 키비탄이란?

키비탄이란 'citizenship'을 뜻하는 Latin어의 CIVITAS에서 나온 말. 선량한 시민정신을 함양해 건전한 시민사회를 건설하자는 뜻.

키비탄클럽의 목적은 회원 모두가 지역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훌륭한 시민이 되고자 하는 것. 특히 지적장애 및 정신지체 아동의 재활, 복지 증진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 

1920년에 미국에서 창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 독일, 덴마크,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인도, 슬로바키아, 방글라데시, 요르단 등 20여개국에 2천500여개의 클럽이 활동중. 우리 나라에서는 1974년에 서울 클럽 창설을 시작으로 현재 45개의 클럽이 각 지역에서 봉사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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